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단순한 한 가족의 흥망성쇠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20세기 한국과 일본, 나아가 미국까지 아우르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이산과 이민)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대작입니다. 특히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삶, 재일조선인의 이민 역사, 일본 내 차별 구조를 깊이 있게 다루며, 독자에게 단순한 감동 이상의 문제의식을 던집니다. 『파친코』는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이어지는 차별과 생존의 서사를 통해, 전 세계 소수자와 이주민의 현실까지 조망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파친코』 속에 내재된 역사적 배경을 보다 상세하게 해설하고, 그것이 인물과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깊이 분석해 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의 억압과 민중의 생존
『파친코』의 시작은 1910년대 부산 근처 작은 해변 마을인 영도에서 펼쳐집니다. 이 시기는 바로 일제강점기의 초기 단계로, 1910년 한일합병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입니다. 일본은 조선을 병합한 후 식민지 수탈 정책을 본격적으로 실시하면서, 정치적 독립은 물론이고 교육, 경제, 언론, 언어까지 철저히 통제합니다. 조선의 전통 사회는 급격히 해체되었고, 대다수 민중은 가난, 기근, 무권리 상태에 처해 생존 자체가 큰 숙제가 되었습니다. 선자의 아버지 훈은 다리를 저는 신체적 장애를 지녔지만, 성실하게 하숙집을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인물입니다. 훈의 삶은 당시 많은 조선 민중이 겪었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일제는 조선인을 농업에만 종사하도록 유도하고, 공업과 자본, 교육 등 근대화의 핵심 영역은 철저히 일본인에게 집중시켰습니다. 조선인은 스스로 계층 상승을 도모하기 어렵게 되었고, 훈처럼 근면하지만 사회적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존재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선자가 성장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두 겹의 억압을 경험합니다. 일본인 상인 고한수와의 관계는 단순한 개인 간의 연애 사건이 아니라,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불균형한 권력관계와 젠더 구조를 상징합니다. 선자는 고한수에게 기대지 않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며 사회적 낙인을 감수하고 독립적인 삶을 선택합니다. 이는 단순한 ‘강한 여성 서사’를 넘어, 식민지 여성으로서 주체적 선택을 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이처럼 『파친코』의 서사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여, 식민지 백성의 삶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제약받았는지를 정교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스스로 존엄을 지키고 가족을 위해 삶을 꾸려가는 민중의 강인함 또한 놓치지 않습니다. 작가는 억압받는 시대 속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생존해 나가는지를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일본 이민사와 재일조선인의 현실
선자와 그녀의 남편 백이삭은 조선에서의 삶에 한계를 느끼고, 보다 나은 기회를 찾아 일본 오사카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들의 선택은 당대 수많은 조선인이 택했던 길이기도 합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 직후까지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이동했고, 그 배경에는 강제 징용, 노동 이주, 식민지 내 계급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이주 후 조선인들은 일본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특히 오사카, 요코하마, 고베 같은 도시에는 조선인 집단촌이 형성되었고, 그들은 일본인으로부터 문화적, 사회적 차별을 받았습니다. 『파친코』 속에서도 선자는 오사카에서의 생활을 통해 철저한 이방인 취급, 빈곤, 문화적 배척에 직면합니다. 당시 재일조선인은 집을 구할 수도,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낼 수도,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백이삭은 조선인 목사로 활동하며 조선인 커뮤니티 안에서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일제 말기의 민족말살정책 하에서는 그마저도 탄압받습니다. 결국 그는 불온한 사상으로 체포돼 고문을 받고 사망하게 되며, 이는 일제 말기 조선인 지식인과 지도자들이 겪었던 억압의 상징적 장면으로 읽힙니다. 선자의 아들 노아는 일본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일본 이름으로 생활하지만, 결국 자신의 출신에 대한 진실을 알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는 일본 사회가 2세, 3세 재일조선인에게조차 여전히 완전한 사회 통합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 구조임을 비판하는 장면입니다. 그 후손인 솔로몬 역시 엘리트 교육을 받고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조선계’라는 이유로 인사에서 배제됩니다. 『파친코』는 이처럼 세대를 거듭해도 사라지지 않는 구조적 차별의 유산을 집요하게 그려냅니다. 소설은 단지 한 가족의 불행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민자 공동체가 세대를 거듭하며 어떻게 일본 사회에서 적응과 저항, 타협과 상실을 반복해 왔는지를 통해 재일조선인 전체의 사회사를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파친코: 생존의 장치이자 차별의 상징
『파친코』라는 제목은 일본에 실제 존재하는 도박형 게임기 산업을 뜻합니다. 파친코는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며 일본 사회의 회색지대를 상징하는 업종이자, 당시 재일조선인들이 집중적으로 종사했던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공식적인 노동 시장 진입이 어려웠던 재일조선인은 공장노동, 청소, 야쿠자, 파친코 운영 등 비주류 경제에 종사하며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선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는 바로 이 파친코 업계를 통해 큰돈을 벌고, 어느 정도 경제적 성공을 이룹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더럽게 돈 번 외국인”이라는 시선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는 나름의 도덕적 기준을 갖고 살아가지만, 사회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파친코는 단순한 업종이 아닙니다. 그것은 재일조선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방식,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으로 경멸당하는 생존 방식입니다. 이 이중성은 모자수의 복잡한 내면과 삶의 조건을 통해 깊이 있게 조명됩니다. 또한 파친코 기계 속 쇠구슬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의 삶도 통제할 수 없는 힘과 제도 속에서 떠밀리며 흘러갑니다. 이는 삶의 무작위성, 차별의 구조, 계층 상승의 한계를 상징하는 탁월한 메타포입니다. 작가는 파친코라는 도구를 통해 독자에게 구조적 억압 속 인간의 선택과 생존을 묻습니다. 이민진은 “인생은 공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말하듯, 『파친코』는 불공정한 세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선택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합니다.
『파친코』는 단지 한 가족의 소설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의 고통, 재일조선인의 정체성, 일본 사회의 차별 구조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담은 문학적 보고서입니다. 이민진은 단순한 서사 전달자가 아니라, 문학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현대의 역사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파친코』는 한국인 독자에게는 잊힌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일본 독자에게는 사회적 소수자의 고통을 자각하게 하며, 전 세계 독자에게는 이민자와 소수자의 공통된 현실을 공감하게 만듭니다. 만약 지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역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지금, 『파친코』를 통해 문학이 전하는 역사적 진실과 감동을 직접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