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격률 5%의 지옥 같은 시험을 통과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로 대표되는 전문직 시장이 AI의 등장으로 구조적 붕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취업난이 아니라 전문성의 정의 자체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점입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전문직 시장에서는 합격증을 손에 쥐고도 백수가 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회계사 미지정 사태: 합격자의 74%가 갈 곳 없는 현실
2026년 회계업계는 말 그대로 공황 상태입니다. 한국 회계학회가 2025년 10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회계사 합격자 중 수습 기관에 등록한 사람은 고작 26%에 불과했습니다. 합격자 1300명 중 338명만이 갈 곳을 찾았고, 나머지 74%에 해당하는 약 1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합격증을 손에 쥐고도 백수가 되었습니다. 미지정 회계사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이는 시험에 합격했지만 수습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현행법상 수습을 마쳐야 정식 회계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합격증은 있지만 회계사가 아닌 어정쩡한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한 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2024년에 수습 기관을 찾지 못한 200여명이 2025년 합격자와 합류하면서, 빅 4 회계법인인 삼일 PWC, 삼정 KPMG, 딜로이트 안진, 한영의 입사 경쟁에 무려 1400명이 몰렸습니다. 700명을 뽑는 자리에 1400명이 지원한 것입니다. 이는 대기업 공채보다 더 치열한 경쟁률로, 전문직이라는 직업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입니다. 금융위원회는 회계 투명성을 높인다는 목표로 2020년부터 회계사 선발 인원을 계속 늘려 2024년에는 1250명까지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빅 4 회계법인의 신규 채용은 2023년 1천 명 이상에서 2025년 700에서 800명으로 약 30% 가까이 급감했습니다. AI 감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사람이 그만큼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예전에는 회계 감사를 할 때 수십 명의 신입들이 밤을 새워가며 서류 뭉치를 뒤졌지만, 이제는 AI가 검색 엔진처럼 몇 초 만에 전체 데이터를 훑어버립니다. 사람 열 명이 일주일 걸릴 일을 AI가 몇 분 만에 처리하는 상황에서,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신입을 10명 뽑을 이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경기가 안 좋아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AI가 신입의 역할 자체를 대체해 버린 구조적인 변화입니다.
변호사 양극화: 연봉 3천만 원 시대와 100대 1 경쟁
변호사 4만 명 시대가 열렸지만, 이 중 절반이 연봉 3천만 원도 못 법니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250만 원이 안 되는 수입으로, 편의점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보다 못한 수입을 올리는 변호사가 2만 명이 넘는다는 의미입니다. 리걸 크루라는 법조 전문 리크루팅 회사가 2025년 채용 시장을 분석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채용 공고를 낸 로펌 열 곳 중 아홉 곳이 경력직만 찾고 있었으며, 신입을 뽑겠다는 곳은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의 채용 통계를 보면, 대형 로펌들이 뽑은 경력 변호사는 1620명인 데 반해 신입은 고작 810명에 불과합니다. 경력직 채용이 신입의 두 배를 훌쩍 넘은 것입니다. 대형 로펌에 진입하지 못한 신입들은 중소형 로펌이나 지방 로펌으로 몰리면서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지원자가 없어서 미달 사태를 빚던 곳들이 이제는 경쟁률 100대 1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신입들이 갈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변호사 시장에도 AI가 깊숙이 침투했습니다. 로앤컴퍼니라는 회사가 만든 슈퍼로이어라는 AI 법률 서비스는 판례를 분석하고, 서면 초안을 쓰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사건 관련 대화까지 처리합니다. 출시 6개월 만에 변호사들의 업무 시간을 230만 시간 절약시켰으며, 이 AI를 쓰는 변호사는 생산성이 1.7배 올라갔습니다. 이용자의 94%가 업무 시간이 줄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예전에 신입 변호사가 3일 밤을 세워야 했던 해외 판례 분석을 이 AI는 3시간 만에 끝냅니다. 로펌 대표 입장에서는 월급 400만 원짜리 신입 변호사 대신 훨씬 저렴한 AI 서비스 구독료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게다가 AI는 밤새 일해도 불평 않고, 퇴사도 없으며, 실수해도 야단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펌들의 전략이 바뀌었습니다. 교육비가 드는 신입 대신 바로 일할 수 있는 경력직을 뽑고, 경력직이 AI를 활용해서 예전에 신입 여러 명이 하던 일을 혼자 처리하게 하는 구조로 전환된 것입니다.
세무사 폐업 증가: 3.3과 AI 기장 서비스의 충격
세무사 시장은 다른 전문직과 구조가 다릅니다. 변호사나 회계사는 대형법인에 취업하는 구조이지만, 세무사는 개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개업 시장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2025년 기준으로 세무사 사무소 폐업 건수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과거에는 한 해에 폐업하는 세무사가 80명을 넘지 않았지만, 지금은 문을 여는 곳보다 문을 닫는 곳이 더 많아졌습니다. 개업하면 평생 먹고 산다는 말이 완전히 옛말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3.3이라는 세금 환급 앱이 있습니다. 이 앱은 AI 알고리즘으로 세금 환급을 자동으로 계산해 주고 신청까지 대행해 줍니다. 원래 세무사에게 맡기면 수수료를 내야 하는 일인데, 이 앱은 무료거나 아주 저렴한 수수료로 해결해 줍니다. 한국세무사회는 이것이 불법이라며 3.3을 고발했지만, 2025년 6월 대검찰청이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AI를 이용한 세무 서비스가 불법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이는 세무사만 할 수 있던 일을 이제 AI앱이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성 안에 있던 세무사들만의 독점 영역에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3.3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토스세이빗, 해움, 비즈앱 같은 AI 기장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서비스들은 월 몇 만 원이면 장부 정리부터 세금 신고까지 자동으로 처리해 줍니다. 예전에 세무사에게 월 20만 원, 30만 원 주고 맡기던 일을 5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돈을 아끼려고 세무사 대신 앱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면 동네 세무사 사무소는 고객을 잃고, 고객이 줄면 수입이 줄며, 수입이 줄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AI가 전문직의 핵심 무기였던 정보 비대칭성을 완전히 깨뜨린 것입니다. 예전에는 판례를 찾으려면 변호사에게, 세금 계산은 세무사에게 물어봐야 했지만, 이제는 AI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높은 성벽 안에 있던 전문 정보에 누구나 무료로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전문직의 존재 가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전문직의 위기는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직업 시스템의 구조적 붕괴입니다. AI가 신입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도제식 교육 경로 자체가 사라졌고, 정부의 공급 과잉 정책이 이를 가속화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전문직의 종말이 아니라 전문성의 재정의를 의미합니다. AI 활용 능력, 복잡한 전략 수립, 정서적 공감, 윤리적 판단 같은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전문가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합격이 더 이상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 끊임없는 진화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p76n2Wvwt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