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1970년대 산업화 시기를 살아간 개인의 비극과 사회적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소설입니다. 특히 노동자, 도시 이주민, 빈곤층의 삶을 구체적이고도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소설에 담긴 주제의식과 핵심 상징을 분석하여, 윤흥길 문학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산업화와 인간 소외라는 주제 의식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도시로 이주한 한 가장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급격한 산업화가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소외와 파괴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나’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서울을 헤매며, 점점 도시의 거대한 기계 속에 삼켜진 개인의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남긴 구두 아홉 켤레는 그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노동의 가치가 개인의 생명이나 존엄을 보장해주지 못했던 사회 구조를 드러냅니다. 윤흥길은 이 작품을 통해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주변화된 인간의 삶을 조명하며, 인간성의 상실과 존재의 불안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매우 구체적인 한국적 현실 속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구두’의 상징성과 서사 속 기능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제목에도 등장하는 ‘구두’입니다. 아홉 켤레의 구두는 단순히 실종된 인물의 흔적이 아니라, 산업화의 희생양이 된 노동자의 삶, 혹은 부재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의 비극성을 대변합니다. 윤흥길은 구두를 통해 존재의 유무를 시각화하면서, 비극적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구두는 신체를 대신하는 물건이자, 한 인간이 남긴 유일한 자취로 작용하며, 그 무게는 곧 생의 무게이자 노동의 총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구두는 가족에게 남겨진 상처의 상징으로도 읽히며, '부재하는 가장'이라는 현실을 강조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윤흥길은 이처럼 일상적 사물을 통해 삶의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상징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아버지와 기억의 구조
이 작품의 또 다른 중심축은 ‘사라진 아버지’라는 존재가 불러오는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다시 만나지 못한 채 그의 흔적을 좇으며,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는 한 개인이 가족과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되짚는 구조이자, 존재의 의미를 회복하려는 여정으로 읽힙니다. 아버지를 향한 회상과 실종된 현실 사이의 간극은 산업화 시대의 단절과 공백을 상징하며, 윤흥길은 이러한 서사 구조를 통해 기억이라는 비가시적 요소를 현실로 불러냅니다. 이처럼 실종과 기억, 추적의 구조는 독자에게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하며, ‘아버지’라는 존재는 곧 시대와 세대의 초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됩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구체적인 현실 묘사와 상징적 장치를 통해 산업화 시대를 살아간 인간의 고통과 소외를 문학적으로 집약한 수작입니다. 윤흥길은 이 작품에서 도시화된 사회의 비인간성과 한 인간의 실종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질문들을 다시 꺼내 보이게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또한, 이 소설을 통해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과 책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