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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간단후쿠 이해돕기 (구성, 인물, 상징)

by start03 2025.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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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책 표지
간단후쿠 책 표지

김숨 작가의 장편소설 『간(肝)단후쿠』는 20세기 일본 제국주의 시대, 강제노동에 동원된 조선인 여성들의 비극을 조명하며, 침묵 속에 묻힌 역사와 집단적 기억을 복원하려는 치열한 문학적 시도입니다. 본 글에서는 『간단후쿠』의 서사 구성, 인물 분석, 상징적 장치들을 중심으로 작품의 핵심 주제와 문학적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소설 '간단후쿠'의 서사 구조와 전개 방식

『간단후쿠』는 비선형적 구조와 다층적 시점을 통해 과거와 현재, 역사와 문학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특징을 보입니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기보다는, 기억의 파편과 역사적 사실, 현재의 탐색 과정을 병렬적으로 배치해 독자에게 더 큰 몰입과 해석의 여지를 제공합니다. 이 작품의 중심 화자는 ‘현재’의 시점에서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한 한국인 여성 ‘나’입니다. 그녀는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방문한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기억의 지층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 흔적들을 따라가면서 ‘간단후쿠’의 실체와 마주하게 됩니다. 1부에서는 이러한 ‘기억의 여정’이 주로 서술되며, 주인공은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과 분위기, 그리고 곳곳에 남은 ‘침묵의 잔해’들을 통해 과거를 직감합니다. 2부에 이르러서는 과거로의 시점 전환이 본격화되며, 강제 동원된 조선인 여성들의 실제 경험이 보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됩니다. 이 부분은 소설의 중심부로, 노동의 강도, 성적 착취, 언어폭력, 생존을 위한 침묵 등 가혹한 현실이 날 것 그대로 펼쳐집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장면들조차 선정적이거나 과잉된 방식으로 다루지 않고, 절제된 언어와 문장 구조를 통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선사합니다. 3부는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서, 주인공이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와 윤리적 책임을 자각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결국 소설은 과거의 고통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문학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복원의 역할을 묻습니다. 구성상 '기억 → 체험 → 기록'이라는 3단 구조를 통해 소설은 한 개인의 탐색에서 출발해 집단적 연대와 문학의 윤리성으로 확장됩니다. 김숨의 글쓰기 방식은 반복과 여운, 침묵의 활용을 통해 사건 그 자체보다 ‘느낌’과 ‘잔상’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문학이 역사적 진실을 말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제시합니다.

인물로 드러나는 집단적 상처와 연대

『간단후쿠』는 역사 속 ‘말해지지 못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려는 소설입니다. 중심 인물인 ‘고아성’(가명)은 조선에서 후쿠오카로 강제 동원된 여성 노동자로, 작품 속에서 그녀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역사의 증언자’로 존재합니다. 고아성은 극도의 공포, 고통, 모멸감을 견디며 침묵 속에 생존하지만, 그 침묵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침묵은 폭력과 저항, 자기 보호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으며, 말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나’라는 인물은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여성으로, 과거에 대한 직접적 기억은 없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기록하려는 ‘연결자’로 등장합니다. ‘나’는 고아성과 물리적으로 만난 적도, 혈연적 관계도 없지만, 여성이라는 존재,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통해 그 기억에 다가갑니다. 이 인물은 결국 독자의 시선을 대변하며, 독자 스스로도 “나는 이 기억과 무관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장치가 됩니다. 또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의미 있는 서사를 갖고 있습니다. 강제노역장을 운영했던 일본 관리자, 어머니와 함께 끌려온 어린 여성 노동자,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노동자 가족 등은 다양한 층위의 피해와 방관, 연대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모두 ‘간단후쿠’라는 공간 안에서 상처받고, 침묵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역사에 참여했던 인물들입니다. 김숨은 특정 인물만의 영웅 서사를 쓰기보다,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소환합니다. 각각의 인물은 독립적인 캐릭터이자, 당대 사회의 단면을 반영하는 구조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는 독자가 현실과 역사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간단후쿠’의 공간성과 상징성

『간단후쿠』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은 제목에 내포된 ‘공간’입니다. ‘간단후쿠’는 실제로 존재했던 후쿠오카의 지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복합어로, 과거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던 장소를 가리킵니다. 이 공간은 단지 이야기의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고통, 역사적 진실, 기억의 장소로 작용합니다. 이 공간은 단순히 과거의 장소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그렇기에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상징적 무대가 됩니다. 소설 속에서 이 장소는 공장, 숙소, 탄광 등으로 묘사되며, 지금은 공원이나 현대식 건물로 대체되었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김숨은 이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 공간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상징은 ‘침묵’입니다. 침묵은 강요된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택한 방어기제이기도 합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그 고통은 오히려 말하지 않았을 때 더 깊이 전달됩니다. 이 점에서 침묵은 언어보다 더 강한 상징이며, 진실을 전달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됩니다. 흔적, 기억, 침묵, 공간이라는 상징들은 서로 얽혀 있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문학적으로 되살립니다. ‘간단후쿠’는 단순히 존재했던 장소가 아니라, 잊히고 지워지려 했던 진실이 머무는 공간이자, 독자에게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김숨은 구체적인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잊는가?’, ‘망각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간단후쿠』를 단순한 역사소설에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독서 경험으로 끌어올립니다.

『간단후쿠』는 단지 과거를 소환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현재 우리가 어떤 기억을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망각과 침묵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가를 문학적 언어로 묻습니다. 구성의 실험성, 인물의 입체성, 상징의 깊이를 통해 김숨은 문학의 사회적 책무를 일깨우며,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과거에 연대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사라진 기억들과 조용히 마주하는 일이며, 그 앞에서 책임을 고민하는 윤리적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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