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 『보건교사 안은영』은 단순한 학원물이나 판타지 소설을 넘어선 독창적 세계관과 상징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작품의 깊이 있는 구조와 서사적 장치, 정세랑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펴봅니다. 더불어 이야기 속에 숨겨진 상징들과 구조적 특징을 분석하여 독자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이 소설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정세랑의 독특한 세계관
『보건교사 안은영』은 한국의 평범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일상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인공 안은영은 학교의 보건교사이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인물로, 학생들을 위협하는 다양한 ‘젤리’ 형상의 존재들과 싸우며 학교를 지켜냅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 요소를 넘어서, 학교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불안, 억압, 상처를 형상화한 은유적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정세랑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며, 일상에서의 괴이함을 포착하는 데 능숙한 작가입니다. 그녀의 세계관은 극단적으로 비현실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의 연장선 위에서 벌어지는 작은 틈새를 통해 환상의 요소가 스며듭니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독자에게 낯익지만 새로운 세계를 제공하며, 이질감보다 친숙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안은영은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를 영웅적으로 휘두르지 않고, 때로는 귀찮아하고 때로는 인간적인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는 정세랑이 지향하는 ‘작은 영웅주의’와도 연결됩니다.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작고 구체적인 도움과 공감이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합니다. 이처럼 작가의 세계관은 환상과 현실, 히어로와 일상인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며, 그 틈에서 따뜻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를 탄생시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상징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핵심적인 서사 장치는 ‘젤리’입니다. 젤리는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안은영만이 이를 감지하고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 젤리는 단순한 몬스터나 악령이 아닌, 인간들의 감정과 관계, 억압된 욕망, 트라우마 등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젤리는 단순한 적대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우리가 외면하고 무시해 온 감정의 실체입니다. 작품 속에서 젤리를 제거한다는 것은 곧 이면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소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세랑은 이를 통해 개인이 사회 속에서 겪는 고통, 차별, 소외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권력관계나 폭력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이 소설은 '보건교사'라는 직업 설정 자체가 상징적입니다. 보건교사는 학생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돌보는 역할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주 주변화되고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안은영은 그 ‘주변인’의 자리에서 중심을 지키며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종종 간과하는 ‘작은 목소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로도 읽힙니다. 정세랑은 단지 판타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기 꺼려했던 현실을 환상이라는 장치를 통해 보여주며 그 의미를 재해석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젤리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치유하고 회복해야 할 내면의 거울처럼 기능합니다.
이야기 구조의 특성과 구성
『보건교사 안은영』은 일반적인 장편소설의 구성과는 다르게, 단편들이 연결된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각 장은 독립된 에피소드처럼 구성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큰 이야기로 이어지며 인물들의 관계와 성장, 학교의 비밀 등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구조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시선으로 주제를 바라보게 하며, 각각의 사건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따로 또 같이 경험하게 만듭니다. 특히 안은영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협력자 ‘한문교사 홍인표’의 존재는 이 이야기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초능력은 없지만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시선으로 안은영의 세계를 받아들이며, 그녀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존재입니다. 이와 같은 인물 관계 구조는 단순한 초능력 판타지가 아닌, 인간관계와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야기 구조상 클라이맥스나 거대한 위기보다, 매일매일의 작고 반복되는 ‘사건’들이 중심이 되며, 이 속에서 안은영은 끊임없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성장해 나갑니다. 이러한 구성은 빠른 전개나 극적인 반전보다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이야기 흐름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적합합니다. 또한, 정세랑은 짧은 문장과 리듬감 있는 서술로 몰입도를 높이며, 중간중간 유머와 은유를 적절히 배치하여 무거운 주제를 부담 없이 풀어냅니다. 이는 작품의 구조적 강점이자, 정세랑 문체의 핵심 특징으로 작용합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단순한 판타지물이 아니라, 정세랑 작가 특유의 시선과 상징이 녹아든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세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주하는 용기, 그리고 일상 속 작은 영웅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작품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책 혹은 넷플릭스 드라마로 꼭 접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삶을 돌아보게 하는 통찰이 담겨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