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하루는 노르웨이 작가 닐스 비크(Nils Beck)가 써낸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담은 소설이다. 이 작품은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과거를 회상하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는 서정적 여정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고요한 문체, 날카로운 감정 묘사, 그리고 죽음을 둘러싼 에필로그 같은 구성은 이 소설을 단순한 감성소설이 아닌 철학적 문학으로 끌어올린다. 이 글에서는 죽음, 고요, 에필로그라는 세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지막 하루를 깊이 있게 해석해 본다.
죽음을 마주하는 가장 고요한 방법
마지막 하루에서 죽음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존재론적 질문’의 무대다. 닐스 비크는 죽음을 두려움이나 회피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마주 보는 용기’로 묘사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생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하루 동안 그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남긴 것들과 남기지 못한 것들을 차분히 정리하려 한다. 작가는 여기서 죽음을 하나의 ‘해석의 장’으로 제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오히려 평온하다는 것이다. 비극적이지도, 급박하지도 않다. 닐스 비크는 이 죽음의 순간을 극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죽음을 비로소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죽음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지만, 작가는 그 안에 구체적인 감정과 기억을 쌓아 넣으며 현실적인 무게를 부여한다. 주인공의 회상은 구체적이고 감정적이다. 그는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리고, 미처 사과하지 못한 일들을 되새기며, ‘말하지 못했던 말들’에 사로잡힌다. 작가는 죽음이 삶의 대척점이 아닌, 오히려 삶의 일부임을 말한다. 그 하루는 마치 축소된 인생처럼 느껴진다. “죽음을 아는 자만이 삶의 밀도를 이해한다”는 전제를 깔고, 비크는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농축시킨다. “나는 누구였는가?”, “나는 사랑을 어떻게 했는가?”, “무엇이 끝나고, 무엇이 남았는가?” 이 질문들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며, 독자 자신에게도 되묻는 형식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마지막 하루에서 죽음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성찰의 언어로 재구성된다. 닐스 비크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을 다시 쓰고, 다시 읽게 만든다. 그것은 떠나는 이의 마지막 문장이면서, 남겨진 우리를 위한 시작의 문장이기도 하다.
고요 속에서 삶을 되짚는 시간들
마지막 하루를 관통하는 감정은 ‘고요함’이다. 닐스 비크는 거대한 사건 없이도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법을 안다. 작중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되짚는 동안 큰소리로 울지도, 외치지도 않는다. 그의 모든 감정은 조용히 침잠해 있고, 작가는 그것을 낱낱이 포착한다. 이 고요함은 단지 배경의 분위기만이 아니라, 소설 전반의 구조와 문체, 호흡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적용된다. 문장은 짧고 간결하며, 수사적 장식이 없다. 독자는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사이, 마치 눈 내리는 북유럽의 어느 마을처럼 조용한 정서 안에 서 있게 된다. 작가는 이 고요함을 통해 독자의 감정을 급작스럽게 몰아가지 않고, 서서히 감정의 수면 아래로 끌어당긴다. 빠르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닌,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게 하는 구성은 현대 독서 리듬과는 다른, 사색적 독서를 유도한다. 또한 고요는 ‘관계’ 속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사이의 대화는 짧고 드물지만, 그 침묵 사이사이에 감정의 진폭이 있다. 이 작품은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전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거나, 회상 속에 떠오르는 장면 하나로도 감정을 전하고, 작가는 그 찰나를 글로 정제해 낸다. 이 고요함은 죽음을 앞둔 인물에게 ‘내려놓음’의 감정을 부여하며, 독자에게도 감정적 여백을 제공한다. 닐스 비크의 고요함은 단지 정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복잡한 층위와 시간의 농도를 담고 있는 장치다. 독자는 이 고요한 장면들을 통해 자신만의 속도로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마지막 하루의 진짜 감동은 바로 이 고요에서 비롯된다. 말이 없는 사이, 삶이 말을 건다.
에필로그처럼 조용히 정리되는 하루
마지막 하루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에필로그’처럼 구성되어 있다. 닐스 비크는 전통적인 서사의 구조를 따르지 않고, 마치 이야기의 끝에서 거꾸로 풀어내듯 이야기를 전개한다. 일반적인 서사에서는 클라이맥스가 전개 중간에 배치되고, 마지막에는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에서 출발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마지막 하루를 자각하고 있고, 독자는 이미 그의 죽음을 예상한다. 그럼에도 독서는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독자는 그 마지막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오롯이 지켜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일종의 ‘삶의 복기’와도 닮아 있다. 에필로그는 보통 주인공이 떠난 후의 세계를 보여주거나, 남은 여운을 정리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닐스 비크는 이 에필로그를 이야기의 ‘본론’으로 끌어올렸다. 주인공이 삶을 정리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일기처럼 쓰여 있고, 그 감정은 마치 인생의 끝자락에 쓰는 편지처럼 절절하다. 특히 작가는 에필로그를 통해 ‘남겨지는 감정’의 무게를 강조한다. 주인공이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느냐, 누구를 떠올리며 떠나느냐는, 곧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대변한다. 주인공은 극적인 반성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정돈한다. “잘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냥 살아냈다.” 이 한마디는 거창한 성공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죽음을 앞둔 인간이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떻게 정리하는지, 그 고요한 자세는 독자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닐스 비크는 이처럼 에필로그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마지막 하루는 어떤 문장으로 채워질 것인가? 남은 사람에게 어떤 말과 표정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마지막 하루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삶의 끝을 시작처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마지막 하루는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조용한 하루를 통해, 삶과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서정적이고 철학적인 소설이다. 닐스 비크는 화려한 구성 대신 고요한 문체와 섬세한 감정선으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책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사유의 기회로, ‘하루’를 축소된 삶의 축으로 보여주며, 독자 스스로의 마지막 하루를 상상하게 만든다.